2026년 1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메디케어(Medicare) 환자의 특정 의료 서비스에 AI가 승인 또는 거부 결정을 내리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메디케어는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방 의료보험으로, 기존에는 의사가 별도 사전승인(prior authorization) 없이 진료를 진행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 이름은 WISeR(Wasteful and Inappropriate Service Reduction). 'AI와 머신러닝으로 메디케어 지출의 적절성을 보장하고 사기·낭비·남용을 줄인다'는 것이 공식 목표다. 뉴저지·오하이오·오클라호마·텍사스·애리조나·워싱턴 6개 주에서 시작해 2031년 말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현재 신경 자극술, 경막외 스테로이드 주사, 경추 유합술, 상처 피부 대체재, 요실금·발기부전 치료 등 12개 안팎의 시술에 사전승인을 요구한다.
준비 안 된 채 출발한 AI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이 소송 과정에서 확보해 9월 공개한 연방 문서들은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급하게 시작됐는지를 보여준다. 업체 중 하나인 Innovaccer는 준비가 안 됐다며 정부에 출시 연기를 요청했다. 거절당하자 이 회사는 한동안 모든 요청을 자동 승인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백로그를 막으면서 규칙 기반 솔루션을 마무리·검증·배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회사는 당시 정부 문서에 적었다.
또 다른 업체 Zyter는 수개월 동안 데이터 오류를 냈다. 메디케어 파트 A(입원)와 파트 B(외래)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Zyter CEO Sundar Subramanian은 Ars Technica에 "현재는 파트 A와 파트 B 모두 완전히 정상 작동 중"이라고 밝혔다.

거부가 승인보다 많았다
업체 Virtix의 수치는 더 직접적이다. 3월 30일 주간 보고서 기준, Virtix는 6,096건의 사전승인 요청을 검토해 2,863건을 승인하고 3,233건을 거부했다. 거부율 53%다.
WISeR은 72시간 내 결정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EFF가 공개한 문서에는 83일째 결정이 나지 않은 요청도 있었다. 한 의료 제공자는 설문에서 "제로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수술이 거의 두 달 미뤄졌다"고 적었다. Virtix는 6월 CMS(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로부터 72시간 규정 미준수로 시정조치(CAP)를 받았다. 이후 평균 처리 시간을 1.18일로 줄였다고 밝혔으며, CAP는 8월 14일 종료됐다.
"인류에 대한 수치"
EFF 문서에 담긴 현장의 목소리는 더 날카롭다. Innovaccer와 협력하던 오하이오주 한 의료 제공자는 설문에 대문자로 이렇게 썼다.

"척추 압박 골절 최소침습 수술(척추성형술)을 기다리는 환자 세 명이 병상에서 우는 걸 지켜봐야 했다. 이 환자들은 극심한 통증을 겪고 있다. 수많은 의사 사무실이 Innovaccer로부터 아무 답도 못 받고 있다… 사람과 통화할 방법이 없다… 미국에서 이게 인류에 대한 수치다. 이건 제3세계 수준이다."
또 다른 오하이오 의료 제공자는 "3~4일 지연도 취약한 환자에게는 힘든 일인데, 몇 주씩 답이 없으면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며 "예방 가능한 고통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은 돌봄 개선을 목적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거부할수록 돈을 버는 구조
지난주 상원 청문회에서 민주당 패티 머리(Patty Murray) 의원은 트럼프의 HHS 부장관 지명자 Chris Klomp에게 핵심 질문을 던졌다. "WISeR 계약 업체들이 케어를 거부하면 더 많은 돈을 버는 구조입니까, 예스 오어 노?"라고 물었다. Klomp는 "제 이해로는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EFF가 공개한 CMS 문서는 이 답변이 사실과 다름을 보여준다. CMS 계획 문서에는 업체들이 "지출 절감분의 일정 비율로 보상받는 새로운 지불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명시돼 있다. 구체적으로, 거부된 요청 건마다 CMS는 해당 지역의 해당 의료 서비스 기준 비용을 산출하고 그 25%를 업체에 지급한다.

CMS 감사원실(Office of the Actuary)은 메모에서 "모델 참여자들은 가능한 한 많은 청구를 거부할 유인을 갖게 된다"고 직접 적었다.
패널티 구조도 약하다. 품질 점수(AQS)가 85~100%이면 절감분의 25% 전액을 받는다. 60~84%면 95%를 받는다. 60% 미만, 즉 낙제점을 받아도 90%를 받는다. 거부 결정이 항소로 뒤집히면 지급이 없지만, 메디케이드 어드밴티지 기준으로 거부에 항소하는 비율은 11.5%에 불과하다. 항소 시 80%는 뒤집히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항소 자체를 하지 않는다.
확장 계획은 멈추지 않는다
정부책임처(GAO)는 5월 트럼프 행정부가 WISeR 설계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고 판단해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프로그램 중단을 시도했지만 공화당이 막았다. 지난주 수전 델벤(Suzan DelBene) 하원의원이 WISeR 관련 문서 추가 공개를 요구하는 위원회 표결을 시도했지만 공화당이 부결시켰다.
CMS 문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WISeR 적용 범위를 암 치료, 항공 구급 이송, MRI 등 첨단 영상 검사, 심장 카테터 삽입술, 심박조율기, 이식형 제세동기(ICD), 유전자·분자 검사로 확대할 계획이다. 머리 의원은 청문회에서 "CMS가 이미 종양학으로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걸 안다. 나는 이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