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국 AI 기업 Kimi가 조용히 실험 하나를 끝냈다. 자사 K3 모델이 EDA 플랫폼 위에서 48시간 동안 사람 손 없이 칩을 설계한 것이다. Cadence나 Synopsys의 상용 소프트웨어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결과물만 보면 인상적이다. 그러나 뜯어보면 현실은 냉정하다. Kimi가 설계한 칩은 현재 기준으로 약 20년 전 기술 수준에 해당하고, 속도는 최신 칩보다 20~30배 느리다. 오픈소스 EDA 툴만으로는 실제 양산 설계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상용 시스템이 필요하다. 완전한 대체는 아직 먼 얘기다.

그런데도 업계가 들썩이는 이유가 있다. RTL 코드 생성부터 테스트 환경 구축, 시뮬레이션·형식 검증·디버깅 툴 호출까지, 에이전트 AI가 실제 워크플로를 바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NVIDIA 연구에 따르면 칩 엔지니어는 업무 시간의 약 60%를 디버깅에 쓴다. 에이전트 AI가 정확히 이 지점을 파고든다.

EDA 3강, 각자의 방식으로 에이전트를 쌓다

AI, 칩 설계 도구에서 설계자로… EDA 3강과 중국 스타트업의 에이전트 전쟁 (summary)

2026 DAC(Design Automation Conference)에서 Synopsys·Cadence·Siemens EDA 세 곳은 서로 다른 전략을 들고 나왔다.

Synopsys는 가장 깊은 AI 축적을 앞세웠다. 2020년 DSO.ai를 시작으로 2026년 AgentEngineer를 출시했고, 이번 DAC에서 완전 자율 설계 검증 에이전트와 Ansys Icepak 기반 자율 열 시뮬레이션 워크플로를 선보였다. 아날로그·혼합 신호 설계 효율 3배, GPU 가속 툴 20개도 함께 공개했다. Synopsys는 자율주행의 L1~L5처럼 AI 자율화 단계를 제시하며 현재 수준을 L3로 규정했다. 2025년 11월 NVIDIA가 Synopsys에 20억 달러를 투자했고, Grace Blackwell 아키텍처는 EDA 워크로드 성능을 30배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Cadence는 아키텍처 완결성에 집중했다. 기존 ChipStack·InnoStack·ViraStack에 AI 슈퍼 에이전트 AuraStack을 더해 검증·디지털 구현·아날로그 설계·PCB/패키징을 한 지붕 아래 묶었다. 멀티피직스 분석 성능 20배, 워크플로 가속 15배를 내세웠고 NVIDIA 엔지니어가 이미 사용 중이다. Cadence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Mental Model'이다. 설계 의도를 구조화된 지식 표현으로 기록해 AI 환각 위험을 낮추는 방식으로, NVIDIA·Qualcomm·Broadcom의 인정을 받았다.

Siemens EDA는 '신뢰할 수 있는 자율성(trusted autonomy)'을 내걸었다. Fuse EDA AI Agent의 핵심 논리는 자기 검증이다. 대형 모델 출력을 결정론적 물리 기반 사인오프 엔진과 교차 검증한다. Solido Layout Analyzer는 STMicroelectronics 비휘발성 메모리 팀의 디버그 시간을 수 주에서 크게 줄였다. Siemens는 Intelligence Center X를 통해 에이전트 스케줄링을 제조·공급망까지 확장하고, MCP 프로토콜로 다른 벤더 툴과의 연결도 열어뒀다.

AI, 칩 설계 도구에서 설계자로… EDA 3강과 중국 스타트업의 에이전트 전쟁 (summary)

세 곳 모두 NVIDIA의 추론 레이어와 거버넌스 레이어에 기대고 있으며, Vera CPU가 EDA 검증 팜에 진입하고 있다.

중국 벤더, 틈새를 노린다

EDA 시장은 오랫동안 Synopsys·Cadence·Siemens EDA의 3강 체제였다. 중국 벤더들은 이 구도에서 에이전트 AI를 발판 삼아 도약을 노린다.

DAC 2026에서 국내 EDA 기업 중 유일하게 실제 도입 사례를 발표한 곳은 Xpeedic이다. Lenovo와 함께 EDA 에이전트를 공개했다. XEPIC은 에이전트 EDA 기반 플랫폼 XEPIC Intelligent System을 출시하며 AI 출력을 검증 가능하고 추적 가능한 사인오프 결과로 전환하는 '증거 루프'를 강조했다. UniVista는 완전 자체 개발 아키텍처 위에 구축한 첫 에이전트 EDA 툴 UDA 2.0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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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Chips Z(첨단 패키징), Banxin의 DVcrew·PDcrew 에이전트, Zhiwei Chuangxin의 LLM 네이티브 검증 플랫폼 ChatDV가 이름을 올렸다. ChatDV는 모듈 단위 검증 기간을 수개월에서 수 시간으로 줄인다고 밝혔다.

한국 팹리스·EDA 생태계가 맞닥뜨릴 변화

한국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라는 메모리 강자를 보유하지만, 팹리스와 EDA 생태계는 상대적으로 얇다. 에이전트 AI가 칩 설계 워크플로를 자동화할수록 진입 장벽이 낮아지는 측면이 있다. 소규모 팹리스도 과거보다 적은 인력으로 설계 사이클을 단축할 수 있는 환경이 열린다.

반면 위협도 있다. 글로벌 EDA 3강이 에이전트 플랫폼을 완성할수록 툴 종속성은 오히려 깊어진다. 중국 스타트업처럼 독자 아키텍처로 에이전트 EDA를 개발하는 시도가 국내에서는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 검증 자동화로 줄어드는 엔지니어링 수요가 어떤 직군에 먼저 닿을지도 지켜봐야 할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