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가 등장한 2022년 11월 이후, UC Berkeley 학생들의 A학점 비율이 13%p 뛰었다. 2022년 기준선 대비 30% 높은 수치다. 평균 학점(GPA)은 0.12점 올랐고, B+나 A- 성적이 A로 올라붙는 현상도 뚜렷해졌다.

연구자 이고르 치리코프는 2018년부터 2025년까지 8개 학기, 84개 학과 319개 강좌에 걸쳐 50만 건 이상의 성적 데이터를 추적했다. 각 강좌의 AI 노출도는 ChatGPT 출시 이전인 2022년 가을 학기 강의계획서를 기준으로 측정했다. 핵심 지표는 글쓰기와 코딩 과제 비중이다. AI가 가장 잘 수행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시험은 그대로, 과제만 올랐다

성적 상승이 진짜 학습 향상 때문인지, AI가 과제를 대신 해준 결과인지를 가르는 열쇠는 과제 비중이다.

AI가 실제로 학습을 개선했다면 과제 중심 수업이든 시험 중심 수업이든 성적 향상이 고르게 나타나야 한다. 반대로 AI가 감독 없는 과제만 대신 해주는 거라면, 과제 비중이 높은 수업에서 효과가 집중돼야 한다.

데이터는 후자를 가리킨다. 과제 비중이 중앙값을 넘는 수업에서는 AI 노출도가 같은 조건의 다른 수업보다 A학점 비율이 16%포인트 더 높았다. 반면 과제 비중이 낮은 수업에서는 효과가 작고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하지 않았다. 치리코프는 이 결과가 "광범위한 학습 향상이나 선택 효과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썼다.

구두 발표 과제를 대상으로 한 위약 검증에서도 같은 패턴이 확인됐다. AI가 상대적으로 덜 유용한 구두 발표 성적은 ChatGPT 출시 이후에도 변화가 없었다.

성적은 오르는데, 실력은?

미국 대학의 성적 인플레이션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하버드에서는 A학점 비율이 2005년 24%에서 2025년 60.2%로 올랐다. 기존 연구들은 교수 평가 제도, 대학 간 경쟁, 기관의 성적 정책 등을 원인으로 지목해왔다.

그런데 AI는 다르게 작동한다고 치리코프는 말한다. 이전의 성적 인플레이션 요인들은 모두 채점 단계, 즉 학생이 이미 과제를 제출한 뒤에 개입했다. AI는 교수가 과제를 보기 전, 작업이 만들어지는 단계 자체를 바꾼다.

글쓰기와 코딩 과제 성적이 점점 AI 생성물을 반영하게 된다면, 기업과 대학원이 더 나쁜 선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연구는 경고한다. 대학에서 AI가 핵심 역량 훈련을 대신하면, 졸업생들이 정작 AI가 가장 강한 영역에서 더 약해질 수 있다는 되먹임 구조도 지적한다.

치리코프가 제안하는 대안은 평가 방식의 재설계다. 모든 과제를 감독 시험으로 바꾸는 건 충분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대신 AI 사용을 제한하거나 작업 과정 기록, 이해도를 확인하는 후속 질문 등을 통해 AI를 의도적으로 수업 안으로 끌어들이는 설계가 낫다고 본다.

샘 알트먼도 걱정한다

OpenAI CEO 샘 알트먼은 최근 인터뷰에서 ChatGPT 출시 3년 반이 지났는데도 교육 시스템이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는 1년간 부정행위가 이어진 뒤 시스템 전반의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금까지 의미 있는 변화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비판적 사고 능력이 "심각하게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알트먼은 글쓰기와 코딩은 AI 시대에도 계속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나는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이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글도 많이 쓰는데, 그래도 내게는 중요하다. 글쓰기를 배운 것에 감사한 이유다. 프로그래밍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노르웨이는 최근 초등학교에서 AI 도구를 사실상 금지하고 중등학교에서도 사용을 제한했다. 요나스 가르 스퇴레 총리는 무비판적인 AI 사용이 학생들이 중요한 학습 단계를 건너뛰도록 유혹한다고 말했다.

한국 교실에서도 같은 질문이 시작됐다

한국 교육 현장도 같은 긴장 안에 있다. 수행평가와 서술형 과제 비중이 높은 내신 구조는 이번 연구가 지적한 '과제 대행' 효과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교육부는 AI 활용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평가 방식 개편은 아직 논의 단계다. 대입 제도 개편 논의가 진행 중인 시점에, 성적이 실력을 얼마나 반영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한국 교육 체계에도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