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7일, 알리바바 DingTalk 전 CEO 천항(Chen Hang)은 무대에 올라 선언했다. "오늘 우리는 DingTalk를 부수고 AI로 다시 짓는다." 그렇게 탄생한 Wukong은 4개월 반 만에 브랜드를 지웠다.
그 자리에 Qianwen Office가 들어섰다. 8월 3일 공개 베타를 연 이 플랫폼은 사용자가 목표를 말하면 에이전트가 작업을 분해하고 도구를 호출해 결과물을 내놓는다. QoderWork, Wukong, MuleRun 세 제품이 흡수됐고, 세 브랜드는 독립 존재를 잃었다. Wukong 조직은 오히려 알리바바 Token Hub 그룹 산하 1급 부서로 승격됐다. 브랜드는 사라졌지만 방향은 조직 위계에서 더 높아졌다.
같은 날 텐센트 클라우드는 WorkBuddy 5.0 이상에서 보안 센터를 기본값으로 켰다고 발표했다. ByteDance는 이번 주 Feishu 제품팀과 Doubao 제품팀을 Zhao Qi 산하 단일 조직으로 합쳤다. Feishu 대표 Xie Xin은 Zhao Qi에게 보고하는 구조가 됐고, GTM팀은 Volcano Engine에 흡수돼 '크리에이티비티 서비스 플랫폼'이 됐다. Caijing에 따르면 Feishu의 2025년 매출은 30억 위안을 넘었고, 2026년 2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100% 이상 성장했다.
세 회사가 7월 안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우연이 아니다.
파일에서 작업으로, 진입점이 바뀐다
기존 오피스 소프트웨어의 논리는 단순했다. 문서를 쓸지, 스프레드시트를 만들지, 회의를 열지 먼저 결정하고 해당 기능을 찾아 들어갔다. 기본 단위는 파일이었다.

Kingsoft Office의 Tian Ran이 설명한 에이전트 시대의 논리는 다르다. "WPS는 보통 문서나 PPT에서 시작하지만, Lingxi는 명확한 목표에서 시작한다." Kingsoft가 7월 출시한 Lingxi Professional은 WPS 안의 AI 기능이 아니다. WPS를 플러그인과 CLI로 호출하는 독립 에이전트다. 기본 단위가 파일에서 작업으로 바뀐 것이다.
이 전환의 기술적 선례는 코딩 영역에서 먼저 검증됐다. Anthropic이 2025년 5월 Claude Code를 열었고, 2026년 2월 기준 연환산 매출 25억 달러를 기록했다. 사용자가 작업 완료에 돈을 낸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Anthropic Cowork는 이 논리를 지식 노동 전반으로 확장했다. 5일 뒤 텐센트 팀이 한 주말 만에 WorkBuddy 0.01을 만들었다. 코딩 에이전트가 검증한 실행 모델을 비개발자용으로 재포장한 것이다.
2026년 6월 기준 중국 데스크톱 AI를 핵심으로 설계한 오피스 에이전트 17개의 월 방문 수는 총 6,000만 건을 넘었다(Analysys 집계). 일간 활성 계정 기준으로 WorkBuddy가 가장 많이 쓰이는 효율 AI 에이전트였다.
에이전트가 혼자 할 수 없는 것
그런데 에이전트가 사용자의 목표를 안다고 해서 기업 내부 상황을 아는 건 아니다. 누가 이 에이전트를 대리하는지, 무엇에 접근할 수 있는지, 프로젝트에서 최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음에 누구와 연락해야 하는지 — 이 맥락을 쥔 건 Feishu, DingTalk, WeChat Work다.

Feishu는 메시지, 문서, 회의, 캘린더, 지식 베이스, 조직 관계, 권한 시스템을 보유한다. 이것이 에이전트가 기업 안에서 작동하려면 반드시 연결해야 하는 환경이다. ByteDance가 Feishu를 독립 SaaS로 두지 않고 Doubao 중심 조직에 편입한 이유가 여기 있다. 포기한 것은 Feishu의 독립 SaaS 경계선이고, 확대한 것은 기업 맥락과 실행 시스템으로서의 가치다.
알리바바의 구조도 같은 논리다. Qianwen Office는 DingTalk IM에 먼저 연결됐다. Volcano Engine은 모델·컴퓨팅·데이터·운영 환경을 공급한다. 에이전트(Doubao·Qianwen Office·WorkBuddy)가 목표를 받고, 협업 플랫폼(Feishu·DingTalk·WeChat Work)이 신원·맥락·도구를 제공하고, 클라우드 인프라가 실행 환경을 받친다. 세 층이 맞물려야 기업형 에이전트가 돌아간다.
보안을 기본값으로 깔다
에이전트가 파일을 직접 수정하고 삭제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실수로 지운 파일을 되돌릴 수 없다면 기업은 에이전트에 권한을 주지 않는다.
WorkBuddy 5.0의 보안 센터는 이 문제를 OS API 계층에서 막는다. 에이전트가 실행하는 모든 명령은 독립 샌드박스 프로그램을 먼저 거친다. 디스크 포맷이나 시스템 루트 디렉터리 탐색 같은 과잉 권한 작업은 차단된다. 명령 텍스트 패턴 매칭이 아니라 OS API 계층에서 AI 의도를 식별하는 방식이라 에이전트가 명령을 우회하는 방식으로는 뚫기 어렵다.
삭제 보호도 OS 계층에서 작동한다. 에이전트가 파일을 지우면 운영체제 수준에서 자동으로 휴지통으로 보낸다. 파일 수정 전에는 원본을 자동 백업한다. PPT, Word, 이미지, PDF 모두 수정 전 버전으로 복원할 수 있다. 백업 기본 용량은 1GB이며 선입선출로 자동 정리된다. 이 기능들은 모두 기본값으로 켜져 있다. 별도 설정이 필요 없다.

보안을 옵션이 아닌 기본값으로 깔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업 IT 담당자가 설정을 마쳐야 쓸 수 있는 기능이 아니라, 처음 켜는 순간부터 작동하는 안전망이다.
한국 기업 SaaS에 던지는 질문
Microsoft는 2023년 365 Copilot으로 이 경쟁의 1막을 열었다. Word, Excel, Teams 안에서 초안을 잡고 요약하는 수준이었다. 2026년 6월 기준 유료 시트는 3,000만 개를 넘었고, Accenture는 74만 개 이상을 구매했다. 그러나 AI가 독립적으로 작업을 완료하는 단계는 Microsoft 생태계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중국 빅테크가 지금 밀어붙이는 건 그 다음 단계다. 에이전트가 작업 진입점이 되고, 기존 협업 플랫폼은 맥락 공급자로 역할을 바꾸며, 보안은 기본값으로 내장된다. 이 구조가 안착하면 오피스 SW 시장의 가치 배분이 달라진다.
국내 기업형 SaaS 시장에서도 같은 질문이 시작됐다. 네이버웍스, 카카오워크 같은 협업 플랫폼이 에이전트 레이어를 자체 구축할지, 외부 에이전트에 맥락을 제공하는 인프라로 전환할지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 기업 데이터 주권과 개인정보 보호 규제가 강한 한국 시장에서 보안 샌드박싱의 기본값화는 도입 장벽을 낮추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다만 중국 플랫폼의 직접 진입보다는 이 구조 전환이 국내 플레이어에게 주는 설계 압력이 더 현실적인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