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가 쏟아내는 콘텐츠를 업계에서는 '슬롭(slop)'이라 부른다. 싸고 빠르게 만들어진, 아무도 원하지 않는 쓰레기 콘텐츠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TikTok 피드가 슬롭으로 뒤덮이는 동안, 창작자들은 자신의 팬에게조차 닿지 못하고 있다.
Patreon CEO 잭 콘테(Jack Conte)는 The Verge의 팟캐스트 Decoder에서 이 상황을 '역겹다(disgusting)'고 표현했다. 그는 "10년마다 반복되는 테크노-법적 사이클이 있다. 기술 기업들이 새 기술을 만들고, 창작자의 작업물을 동의·보상·크레딧 없이 가져간 뒤 '변형적 사용'이라며 저작권을 피해간다"고 말했다. AI 학습 데이터 문제가 정확히 그 패턴이라는 것이다.
팔로워 기반 도달권을 되찾다
Patreon은 지난 5년간 플랫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5년 전 콘테는 Patreon을 순수한 결제 인프라로 정의했다. 크리에이터가 트위터나 유튜브에서 팬을 모으면, Patreon은 수익화만 담당했다. 지금은 다르다.
"Facebook을 탑 오브 퍼널로 의존하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니다." 그래서 Patreon은 직접 피드, 네이티브 영상, 채팅, 단문 포스팅, 검색·발견 기능을 차례로 만들었다. 현재 플랫폼 내 무료 멤버십(팔로우)은 1억 8500만 개로, 전년 대비 2배 증가했다. 매달 150만 명의 신규 팔로워가 Patreon 자체 시스템을 통해 창작자에게 연결되고, 그 중 75만 명이 유료 멤버로 전환된다.
핵심은 '결정론적 도달(deterministic reach)'이다. 알고리즘이 아니라, 팔로우한 사람에게 반드시 닿는 구조다. 콘테는 "우리는 세션 시간을 추적하지 않는다. A/B 테스트 지표도 아니다. 창작자가 팬에게 실제로 닿는지를 본다"고 했다.
AI 활용의 경계선: 불레이 다이어그램
Patreon은 내부적으로 AI 도구를 적극 활용한다. 엔지니어들은 LLM으로 코딩하고, Notion 에이전트가 내부 문서를 요약한다. 콘테는 "이 도구를 쓰지 않으면 3년 안에 죽는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창작자를 향한 AI 기능은 다르다. Patreon은 '불레이 다이어그램' 구조로 접근한다. 가장 안쪽 원은 창작 행위 자체다. 창작자들은 여기서 AI 개입을 원하지 않는다. "스크립트 아이디어를 주지 마라. 포스트 제목을 달지 마라. 그냥 내버려 둬라." 한 창작자의 말이다: "아이디어는 백만 개다. AI가 영상 아이디어를 더 줄 필요 없다. 세금 신고와 화장실 청소를 도와줘라."
한 단계 바깥은 콘텐츠 패키징이다. 자동 챕터 마커, 긴 팟캐스트를 클립으로 자르는 기능이 여기 해당한다. 그다음은 마케팅 자동화, 그다음은 비즈니스 관리다. 창작 행위에서 멀어질수록 AI 수용도가 높아진다.
슬롭 필터링: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
AI 생성물 탐지는 Patreon도 해법을 찾는 중이다. 콘테는 "AI 생성 여부를 확실히 판별하는 API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있다 해도 누군가 곧 뚫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콘텐츠에 AI 라벨을 붙이는 대신, 인간 창작물에 '인간 제작' 인증을 부여하는 역발상도 논의 중이다.
콘텐츠 정책은 Patreon과 Substack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Patreon은 성인 콘텐츠(18+ 카테고리)는 허용하되 포르노는 금지하고, 나치즘 등 혐오 콘텐츠를 차단한다. 콘테는 "콘텐츠 정책은 부가 기능이 아니라 핵심 제품"이라고 했다. 일부 창작자가 Substack을 떠나 Patreon으로 이동한 이유도 이 정책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Apple 수수료와 창작자 수익
Apple 인앱 결제 30% 수수료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Epic 소송 이후 Patreon은 웹 결제로 유도하는 흐름을 앱에 추가했지만, Apple이 이에 반응해 기존 결제 모델 전환 기한을 재조정했다. 현재 Patreon은 iOS 앱 내 멤버십 가격을 높여 창작자의 실수령액을 유지하는 방식을 쓴다. 추가 비용은 팬에게 전가된다. "창작자 수익을 지켰지만, 팬이 더 내는 구조라 좋은 경험은 아니다"라고 콘테는 인정했다.
한국 창작 생태계에 던지는 질문
국내 웹툰·팬덤 플랫폼도 같은 압력 앞에 서 있다. 네이버웹툰, 카카오페이지 등 주요 플랫폼은 AI 생성 웹툰의 투고 기준을 아직 명확히 공개하지 않은 상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AI 창작물 가이드라인 논의를 진행 중이지만, 창작자 수익 보호를 위한 구체적 제도는 마련되지 않았다. Patreon의 접근—창작 행위 자체에서 AI를 배제하고, 비즈니스 관리 영역에만 AI를 허용하며, 콘텐츠 정책을 핵심 제품으로 삼는 구조—은 국내 플랫폼이 참고할 수 있는 실질적 모델이다.
콘테의 결론은 단순하다. "싸고 쉬운 슬롭이 넘치는 세상에서, 진짜 창작자와 깊이 연결되고 싶은 사람들의 수요는 오히려 커진다." 플랫폼의 역할은 그 연결을 끊지 않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