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라이몬도(Gina Raimondo) 전 미국 상무장관이 2026년 6월 'Raise Us'를 공식 출범시켰다. 전 인디애나 주지사 에릭 홀컴(Eric Holcomb)과 함께 설립한 초당파 비영리 단체다. 목표는 단순하다. AI가 바꿔놓을 노동 시장에서 미국 노동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 것. 라이몬도는 CEO를 맡았다.

"미국에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기술 전략이 있다. 하지만 사람 전략은 아직 없다. 사람 없이는 이길 수 없다"고 라이몬도는 출범 자리에서 밝혔다. "세계 최고의 AI 시스템을 만들면서 수백만 명의 미국인을 뒤에 남겨둔다면, 우리가 이긴 게 아니다. 우리 스스로 쇠퇴를 자동화한 셈이다."

경쟁사들이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Raise Us의 출자 구조가 눈길을 끈다. Amazon, Anthropic, Microsoft, OpenAI Foundation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AI 업계에서 서로 경쟁하는 기업들이 인력 전환 지원을 위해 공동으로 독립 단체에 자금을 댄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라이몬도는 밝혔다.

Bank of America가 선도 후원사로 참여해 첨단 제조업 견습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그 외에도 ADP, AMD, Autodesk, Blackstone, Cisco, Cognizant, Deloitte, Eli Lilly, General Motors, IBM, Mastercard, ServiceNow, UPS, Workday 등이 참여한다. 재단 측에서는 록펠러 재단, Arnold Ventures, Pritzker Traubert 재단, Stephen A. Schwarzman 재단이 함께한다.

목표 금액은 다년간 서약 기준 10억 달러. The New York Times에 따르면 이미 5억 달러는 확보된 상태다.

비교 맥락을 짚어두자. Google, Amazon, Microsoft, Meta가 올해 AI에 쏟아붓는 돈은 합산 7,250억 달러다. Raise Us의 10억 달러 목표는 그 0.1% 수준이다.

독립성 문제는 구조적이다

AI 자동화로 직접 이익을 얻거나 그 확산을 주도하는 기업들이 재교육 펀드를 운영한다. Raise Us가 AI 주도 일자리 감소의 해법을 개발해야 하는데, 정작 그 혼란을 만드는 당사자들이 돈을 댄다는 구조적 모순이다. 단체 측은 이 문제를 의식한 듯 '정책 연구소(Policy Lab)' 부문만큼은 기업 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4개 주에서 시범 사업 시작

Raise Us는 아칸소, 코네티컷, 메릴랜드, 유타 4개 주와 파트너십을 맺고 시범 사업을 시작한다. 공화당(아칸소·유타)과 민주당(코네티컷·메릴랜드) 주지사들이 고루 참여하도록 설계한 초당파 구성이다.

아칸소에서는 AI 기반 취업 경로 탐색 플랫폼 'Arkansas LAUNCH'를 지원한다. 학생과 구직자에게 맞춤형 학습 경로와 기업 연계 커리어 트랙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메릴랜드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생 대상 'Service Year' 프로그램을 의료 등 인력 부족 분야로 확대하고, 전직 지원 모델을 위한 경쟁 펀드와 창업 가속화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일부 주에서는 완전히 노동 시장을 떠나는 대신 낮은 임금의 일자리를 받아들인 노동자에게 임금 차액을 보전해 주는 '임금 보험(wage insurance)' 도입도 검토 중이다.

4개 축으로 구성된 조직

Raise Us의 활동은 네 영역으로 나뉜다. '주 정부 파트너십'은 교육·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실제 고용주 수요와 연결하는 데 집중한다. 단순 등록 인원이 아니라 취업 성과를 기준으로 공공 자금을 배분하는 방식을 도입한다.

'고용주 연합'은 AI를 도입한 기업들이 공동으로 재교육·유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구조다. Microsoft는 이미 한 모델을 시험했다. 법무 부서 등 각 부서의 초급 직원을 교육해 AI 역량을 키우고, 기술 변화에 따라 새로운 역할로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방식이다. Microsoft 부회장 브래드 스미스(Brad Smith)는 "거의 모든 직무에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훈련' 축은 실무 경험과 자격증을 결합한 AI 기반 훈련 모델을 확산시키고, 기존 대학 교육보다 저렴한 대안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정책 연구소'는 새로운 정책 접근법을 개발·실험하며, 앞서 언급한 대로 기업 자금을 받지 않는다.

재교육의 벽은 여전히 높다

미국에서 실직 노동자 재교육은 성과가 들쑥날쑥했다. 라이몬도 자신도 과거 재교육 프로그램들을 "비효율적"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의회는 1973년 통과된 주요 직업 훈련법에 대한 예산을 꾸준히 삭감해 왔고, 개혁 논의는 번번이 흐지부지됐다.

Raise Us가 과거 프로그램들보다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이 단체가 출범한 시점 자체는 의미심장하다. 미국이 AI 인프라와 모델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동안, 노동자들이 앞으로의 구조적 변화를 어떻게 통과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없는 상태다.

더 근본적인 질문도 있다. AI가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깊이 노동 시장을 바꿀 것인가. AI가 특정 업무 속도를 높이는 건 사실이지만, 전반적인 생산성 향상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는 아직 일치하지 않는다. AI가 대규모 일자리 감소를 유발할 만큼 경제 전체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도 아직 없다.

한국에서 이 뉴스가 갖는 의미

미국은 AI 자동화 충격에 대비해 빅테크 주도의 민관 협력 펀드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선제 대응에 나섰다. 한국도 AI 자동화에 따른 노동 시장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제조업·서비스업·사무직 전반에 걸쳐 AI 도입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기업 주도 재교육 모델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이번 사례는 국내 정책 논의에도 참고 지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