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편도 들지 않은 의견서

위키피디아를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 Wikimedia Foundation이 금요일 AI 저작권 소송에 법정조언자 의견서(amicus brief)를 냈다. 대상은 The New York Times 등 출판사들이 OpenAI와 Microsoft를 상대로 낸 일련의 소송이다. 재단은 어느 쪽도 편들지 않았다.

재단은 의견서에서 "양측 입장이 공정 이용 원칙을 지나치게 넓고 단순하게 적용하자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우려했다. 출판사가 완승하면 저작권자가 혁신적이고 변형적인 이용까지 '문지기'처럼 막을 수 있다고 봤다. 반대로 AI 기업이 완승하면 "라이선스 조건을 무시해도 된다는 청신호"가 되어 인간 저자와 독자 사이의 지식 흐름이 쪼개질 수 있다고 했다.

재단의 절충안: 학습과 재현을 나눈다

위키미디어 재단, AI 저작권 소송서 '학습은 허용, 재현은 라이선스' 제안 (summary)

재단 제안은 두 단계로 나뉜다.

  • 학습: 웹사이트를 긁어 가는 스크레이핑은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는다. 라이선스 없이 저작물로 거대언어모델(LLM)을 사전학습하는 일도, 원본과 "새롭고 다른 것"을 내놓는다면 공정 이용으로 본다.
  • 재현: 모델이 이용자 질의에 답하며 자료의 사본을 가져와 전달하고, 독자가 원작을 접할 기회를 대신하는 경우에는 라이선스가 필요하다. 이때 AI 출력은 원작을 변형하지 않고 대체할 뿐이어서 공정 이용 요건에 못 미친다는 논리다.

위키피디아로 보면 이렇다. 콘텐츠는 Creative Commons 라이선스로 풀려 있다. 재현이 필요한 경우 AI 기업은 원 출처를 표기해야 하고, 리믹스나 변형물도 같은 라이선스를 유지해야 한다. 재단은 ChatGPT 같은 서비스가 CC 라이선스 텍스트를 재생산하면서도 라이선스 조건은 지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위키피디아가 걸린 이해관계

위키미디어 재단, AI 저작권 소송서 '학습은 허용, 재현은 라이선스' 제안 (summary)

재단 설명으로 Wikimedia 사이트는 "모든 AI·머신러닝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 출처" 중 하나다. 그런데 같은 AI 시스템이 방문자를 빼앗아 가며 사이트를 유지하는 커뮤니티를 약화시킨다고 한다. The Verge는 위키피디아 트래픽이 AI 때문에 빠지고 있다고 별도로 보도한 바 있다.

LLM이 위키피디아에 도움이 되는 면도 재단은 인정한다. 편집자가 훼손 행위, 저작권 위반, 신상 노출(doxxing)을 잡아내고 보완이 필요한 문서를 찾는 데 쓸 수 있다. 판결이 한쪽으로 쏠리면 이런 도구를 못 쓰게 되거나, 개방형 웹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 재단의 걱정이다.

재단 법률고문 스티븐 라포트(Stephen LaPorte)는 성명에서 "공정 이용 원칙을 신중하게 적용하지 않은 판결은 자유로운 지식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버나뎃 미한(Bernadette Meehan) CEO는 "AI로 지식 접근을 넓히는 것은 강력한 목표이지만, 신뢰할 만한 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과 기여자, 공동체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송 당사자들의 입장

위키미디어 재단, AI 저작권 소송서 '학습은 허용, 재현은 라이선스' 제안 (keyword_summary)

재단의 주장과 소송 당사자의 입장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의견서는 재단의 주장이며 판결이 아니다.

NYT는 공정 이용을 더 좁게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OpenAI가 학습 데이터셋을 만들려고 자사 웹사이트를 긁어 갔다며 저작권 침해를 주장한다. OpenAI와 Microsoft는 LLM 이용이 공정 이용이라고 맞선다. OpenAI는 저작물 재현을 "드문 버그"라고 밝혔다. Microsoft는 9월 제출 문서에서 전문가 분석상 Copilot이 모델 근거 자료로 쓴 뉴스의 문장을 온전히 재현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했다. 이를 두고 "LLM 학습의 변형적 목적을 거의 훼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국 독자에게 걸리는 지점

이 소송은 미국 법원 사건이고, 한국 법원에 직접 적용되는 판단은 아니다. 다만 쟁점은 한국의 창작자와 온라인 정보 제공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AI가 내 글을 학습하는 일과 AI가 내 글을 거의 그대로 내놓는 일은 같은 문제인가. 재단은 이 둘을 갈라 보자고 제안한다. 국내 사정에 대한 소스는 없으나, 블로그나 커뮤니티 글, 공개 라이선스로 지식을 공유해 온 이용자라면 이 구분을 눈여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