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허리케인 멜리사가 자메이카에 상륙하던 날, 미국 국립허리케인센터(NHC) 관제실 화면에는 평소와 다른 예측 데이터가 떠 있었다. Google DeepMind의 WeatherNext Cyclones(WN-C)가 폭풍의 급격한 강화를 24시간 전에 포착해낸 것이다. 24시간 안에 풍속이 30노트(약 56km/h, 약 34mph) 이상 급상승하는 '급격한 강화'는 기존 모델들이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WN-C는 NHC, 대기연구협력기관(CIRA), 영국 기상청(UK Met Office)과 공동 개발한 모델이다. 2025년 6월부터 Google Weather Lab에서 실시간 예측을 운영 중이며, 연구 결과는 Nature에 게재됐다.
수십 년간 이어진 트레이드오프를 깨다
사이클론 예측에는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딜레마가 있었다. ECMWF의 앙상블 시스템(ENS)처럼 전 지구 모델은 경로 예측에 강하지만 강도 파악이 너무 거칠다. 반대로 NOAA의 HAFS 같은 지역 특화 모델은 강도는 정밀하지만 경로 정확도가 떨어진다. WN-C는 이 둘을 하나의 시스템에서 처리한다.
수치로 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5일 예측 기준 폭풍 중심 위치 오차는 평균 230km로, ENS(370km)와 DeepMind의 이전 모델 GenCast(335km)보다 크게 낮다. 3일 강도 예측에서는 HAFS보다 3.75노트(약 7km/h) 더 정확하다. 64노트 이상 허리케인 강도 도달 확률 예측에서도 ENS와 GenCast 대비 두 배 이상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28km 격자로 뽑아낸 정밀도
놀라운 점은 해상도다. WN-C가 쓰는 데이터 격자는 한 점당 약 28km를 커버한다. 지역 특화 모델보다 약 100배 거칠다. 심지어 격자 간격 111km짜리 경량 버전도 경쟁력 있는 결과를 낸다.
논문 저자들은 "고해상도가 최첨단 강도 예측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라고 썼다. 거친 기상 데이터 안에 폭풍 강도 정보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모델이 이 해상도에서 어떻게 이런 정확도를 내는지는 아직 열린 연구 과제다.
확산 모델 대신 FGN — 8배 빠른 추론
WN-C의 핵심 기술은 Functional Generative Networks(FGN)다. GenCast가 채택한 확산(diffusion) 방식은 예측 단계마다 신경망을 수십 번 통과해야 한다. FGN은 한 번으로 끝낸다. 속도가 8배 빠르다.

불확실성 포착 방식도 다르다. 대부분의 접근법이 개별 픽셀에 노이즈를 더하는 방식인 반면, WN-C는 네트워크의 제어 레이어에 노이즈를 주입한다. 같은 출력의 노이즈 변형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일관된 다양한 시나리오를 생성하는 방식이다.
학습 데이터는 두 가지를 병합했다. ECMWF 분석 데이터 약 20테라바이트와 약 5,000개의 역사적 사이클론 데이터베이스다. 위치·강도·바람 반경 등 표 형태의 사이클론 데이터를 기상 데이터와 동일한 지리 격자로 투영해 두 소스를 함께 학습시켰다. 논문의 절제 실험은 이 공동 학습이 성능 향상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1,000개 시나리오, 1분 안에
구글 AI 칩 하나로 15일 예측을 1분 안에 돌릴 수 있어, DeepMind는 병렬 예측 실행 수를 50개에서 1,000개로 늘렸다. 이 대규모 앙상블은 극단적 희귀 사건을 더 안정적으로 포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확한 경보와 오경보·미탐지를 함께 고려하는 Critical Success Index는 0.3 미만에서 0.5로 올라갔다.

대체가 아니라 보완
DeepMind는 기존 수치 모델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NHC는 여러 물리 기반 모델을 가중 평균해 공식 예보를 낸다. 시뮬레이션 결과에서 WN-C를 이 합의 모델에 추가하면 경로 예보 정확도가 평균 28% 향상된다. 강도 예보 개선은 약 6%로 작다. 전통 모델이 강도 영역에서 여전히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의미다.
DeepMind는 WeatherNext 2와 WeatherNext Cyclones의 코드·가중치를 GitHub에 공개했다. 경량 버전은 무료 Colab 노트북에서 TPU 하나로 돌릴 수 있다. 공식 경보는 여전히 각국 기상청을 통해야 한다.
한국 태풍 예보 시스템에 던지는 질문
한국 기상청은 태풍 시즌을 앞두고 AI 기반 예보 시스템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WN-C가 제시한 방향, 즉 전 지구 모델의 경로 예측과 지역 특화 모델의 강도 예측을 단일 AI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접근은 한국형 태풍 예보 모델 개선에도 직접적인 참고점이 된다. DeepMind가 코드와 가중치를 오픈소스로 공개한 만큼, 국내 연구기관이 WN-C 구조를 한반도 인근 태풍 데이터에 적용해 검증하는 작업도 현실적인 경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