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컨베이어 위에 뒤섞인 채 쏟아진 부품들. 로봇 팔이 잠시 멈추더니 스스로 그리퍼를 교체하고, 프로그래밍 없이 낯선 물체를 집어 올린다. 페스토(Festo)가 공개한 GripperAI의 실증 장면이다.

HPPH: 0.68kg 안에 제어·감지·안전을 모두 담다
페스토는 두 손가락 방식의 공압 평행 그리퍼 HPPH를 출시했다. 무게는 0.68kg(1.5lb). 협동 로봇의 가장 큰 제약인 가반 하중과 배선 복잡도를 동시에 줄이는 것이 설계 목표였다.
기존 공압 그리퍼는 외부 제어 밸브, 센서, 전기 인터페이스를 별도로 연결해야 했다. 부품이 늘수록 무게가 늘고 배선이 복잡해진다. HPPH는 이 세 가지를 그리퍼 본체 안으로 통합했다. 주문 항목이 줄고, 설치와 시운전 시간도 단축된다. IO-Link 버전을 선택하면 원격 진단과 설정 변경도 가능하다.
최대 개구부는 16mm, 파지 가능한 물체 무게는 최대 1kg(2.2lb)다. 협동 작업 모드에서는 힘 제한 파지력 140N(31.5lbf)을 적용한다. 사람과 가까운 거리에서 작업할 때 부상 위험을 줄이기 위한 수치로, 페스토는 이를 "단단한 악수 정도의 힘"으로 설명한다. 비협동 환경에서는 힘 제한을 해제해 최대 180N(40.5lbf)까지 높일 수 있다.
HPPH는 협동 로봇 안전 국제 기술 규격 ISO/TS 15066을 준수해 개발됐으며, HAFH-B30-16-45-N 그리퍼 핑거와 함께 사용할 때 TÜV 쥐트(TÜV Süd) 인증을 충족한다. 하우징 모서리와 끼임 지점을 최소화한 매끄러운 외형도 안전 설계의 일부다.
단, 가공 환경이나 연삭 분진·용접 스패터가 발생하는 공간에는 적합하지 않다. HPPH는 페스토 공식 웹사이트와 유니버설 로보틱스 마켓플레이스에서 구매할 수 있다.

GripperAI: 처음 보는 물체도 집는다
GripperAI는 물체를 미리 등록하거나 티치인(teach-in) 훈련 없이 최적의 파지 지점을 스스로 찾는 소프트웨어다. 협동 로봇, 산업용 로봇, 직교 좌표 핸들링 시스템 등 로봇 종류와 무관하게 작동하며, 다양한 그리퍼와도 호환된다.
가장 눈에 띄는 기능은 자동 공구 교환이다. 파지 작업에 맞는 엔드 이펙터를 소프트웨어가 판단해 직접 교체한다. 물류, 제조, 포장 현장처럼 다양한 형태의 물체를 다루는 환경에서 유연성을 높이는 핵심 기능이다.
하드웨어 요구 사항도 낮다. 단순 작업이라면 저가형 3D RGB-D 카메라와 코어 i3 CPU(RAM 4GB 이상)로 충분하다. 불규칙한 형상이나 혼재된 부품 파지처럼 복잡한 작업에는 고사양 GPU와 카메라를 추가해 속도와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소프트웨어는 모듈형으로, 현장 설치와 클라우드 운영 모두 지원하며 REST 인터페이스로 통합한다. 로봇 CPU, 산업용 PC, 카메라 내부에도 배포 가능하다.
뷔르트 물류 현장 실증
뷔르트 그룹(Würth Group)이 GripperAI를 물류 현장에서 시험했다. 무작위로 뒤섞인 부품이 담긴 크레이트를 비우는 작업이었다.
페스토 고급 개발 분석·제어 부문장 얀 자일러(Jan Seyler)는 "실험실에 뷔르트의 분류 컨베이어를 그대로 복제해 물체별 그리퍼 선택, 트레이에서 임의의 물체 파지, 배송 박스 포장, 박스와 트레이 핸들링 등 다양한 역량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시스템은 물체를 식별하고, 적합한 파지 도구를 선택하고, 포장·분류까지 수행했다. 사람의 개입이나 사전 프로그래밍된 물체 데이터는 없었다. 뷔르트가 계획 중인 모든 라인에서 운용 가능하다고 페스토는 전했으며, 양사는 추가 개발과 최적화 방향도 확정했다.
국내 제조 현장에서의 의미
국내 협동 로봇 시장은 현대로보틱스, 두산로보틱스 등 자체 브랜드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도입 장벽 중 하나는 새로운 물체마다 반복되는 티치인 작업과 그에 따른 초기 설정 비용이다. GripperAI처럼 사전 학습 없이 바로 투입 가능한 소프트웨어는 다품종 소량 생산 환경이 많은 국내 중소 제조업체에 실질적인 이점을 줄 수 있다. 다만 현재 공식 국내 유통 채널과 한국어 지원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