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선반 앞에 로봇팔이 멈춘다. 집어야 할 건 얇은 비닐봉지 하나. 기존 흡착 컵 방식이라면 여기서 실패 신호가 뜰 가능성이 높다. 구멍이 숭숭 뚫린 폴리백, 구겨지는 천 소재 제품 — 흡착으로는 진공을 잡을 수 없는 물건들이다. Locus Robotics가 이 장면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Locus Robotics는 자율이동로봇(AMR) 분야에서 수많은 창고에서 수백만 킬로미터를 주행하고 60억 건 이상 피킹을 소화해온 업체다. 2025년 3월 모바일 매니퓰레이터 Array를 공개하며 로봇 피킹 시장에 진입했고, 이후 캐나다 밴쿠버 기반 Nexera Robotics를 인수해 NeuraGrasp 그리핑 기술을 품에 넣었다.
흡착이 닿지 않는 30~40%
Locus의 로봇 그래스핑 부문 수석 부사장이자 Nexera 전 CEO인 Roy Belak은 창고 피킹 작업을 스펙트럼으로 설명한다. 흡착 방식은 전체 작업의 60~70%를 충분히 커버한다. 문제는 나머지다.
"흡착은 창고 환경에서 매우 효과적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30~40%, 즉 커버리지 비율을 높여야 하는 구간에서 한계가 드러나죠." Belak이 The Robot Report에 밝힌 말이다.
NeuraGrasp는 흡착과 핀치(집기) 방식을 동시에 쓰는 소프트 엔드이펙터다. Nexera는 이 기술을 최소 6세대에 걸쳐 다듬어왔다. 폴리백처럼 구멍이 있는 소재, 천처럼 형태가 불규칙한 물체도 파지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Belak은 "핀치 그래스핑이 로봇 파지의 미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건 업계에서 100% 인정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흡착이 상당 부분을 해결해준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Array에 NeuraGrasp를 끼워 넣다
Locus가 Array 개발을 거의 마무리한 시점에 Nexera와 만난 건 행운에 가까웠다. Array는 이미 공압 공급 장치와 전원 공급 장치를 갖추고 있었고, 이는 NeuraGrasp 통합에 필요한 조건과 맞아떨어졌다. Belak은 "1년만 늦었어도 변경이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현재 Locus는 기존 흡착 그리퍼를 탑재한 Array를 고객사에 초기 배포하는 단계다. NeuraGrasp 탑재 버전은 아직 공개 일정이 나오지 않았지만, Belak은 "다음 번 Array가 공개될 때는 Nexera 기술이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미 도입을 원하는 고객사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고도 했다.
속도보다 신뢰성, 신뢰성보다 품질
Locus가 강조하는 건 피킹 속도가 아니다. Belak은 "산업 환경에서 신뢰성이 전부"라고 잘라 말한다. 핀치 그래스핑 기술은 복잡도에 따라 신뢰성 편차가 크다. 로봇이 잘 집을 수 있느냐보다, 같은 작업을 얼마나 일관되게 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중 피킹, 미스픽, 제품 손상 — 로봇 홍보 자료에서 잘 언급되지 않는 항목들이지만, 실제 고객 비용을 갉아먹는 요인들이다. "품질을 확보한 다음에야 속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Belak의 말이다.
촉각 센싱,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
Belak이 꼽는 업계 전체의 두 가지 병목은 AI 고도화와 로봇의 촉각 구현이다. 정교한 손 구조를 만드는 건 이미 가능하다. 하지만 그 손이 실제로 무언가를 집을 때 필요한 고유감각(proprioception)과 피드백 메커니즘은 여전히 뒤처져 있다.
"사용해도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 견고하고 신뢰할 수 있는 촉각 센싱이 빠져 있습니다.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 같지 않아요." Belak의 진단이다. Nexera는 현재 촉각 센싱을 일부 적용하고 있으며, 향후 이를 더 발전시킬 계획이다.
국내 물류 현장과의 접점
국내 이커머스·풀필먼트 창고에서도 유연 소재 상품 처리는 오랜 과제다. 의류·식품 포장재처럼 형태가 불규칙하거나 흡착이 어려운 품목은 여전히 사람 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NeuraGrasp처럼 흡착과 핀치를 결합한 소프트 그리퍼 기술이 실제 창고 환경에서 신뢰성을 입증한다면, 국내 물류 자동화 도입 검토 대상에도 자연스럽게 오를 수 있다. 다만 현재 Array는 초기 배포 단계로, 실제 운영 데이터 축적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은 변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