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휴머노이드 경쟁의 공식은 단순했다. 로봇을 만들 수 있으면 시장을 노릴 수 있었다. 2026년, 그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스펙 전쟁의 끝, 학습 전쟁의 시작

과거 로봇 경쟁력의 핵심은 기구 설계, 관절 모듈, 모션 제어, 공급망 관리였다. 더 민첩하고, 더 안정적이고, 더 저렴한 로봇이 이겼다. 그런데 기본적인 움직임 문제를 푸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병목이 드러났다. 로봇이 복잡한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가. 명시적으로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과제를 처리할 수 있는가. 한 번의 동작에서 배운 것을 다른 로봇에게 전이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점점 AI의 질문과 닮아간다.

AgiBot의 올해 행보가 이 전환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이 회사는 2026년 들어 Expedition A3 같은 하드웨어를 계속 발전시키는 한편, AI 모델과 데이터 인프라를 동시에 업그레이드했다. 4월에는 구현형 파운데이션 모델 GO-2를 공개해 로봇의 이해·계획·실행 능력을 끌어올렸다. 시뮬레이션 환경 Genie Sim 3.0은 훈련 데이터를 생성하고, 회사 측 발표에 따르면 10만 개 이상의 시나리오를 커버하는 평가 시스템과 1만 시간 이상의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개방했다.

로봇 회사들, AI 회사로 진화한다… 경쟁의 축이 바뀐다 (summary)

여기에 AGIBOT WORLD 프로젝트는 수백만 건의 실세계 로봇 데이터 샘플을 쌓았고, Hive Data Co-Creation Initiative는 2026년 안에 수천만 시간 규모의 데이터 생산 능력을 목표로 내걸었다. 실세계 데이터 수집 → 시뮬레이션 훈련 → 모델 업그레이드 → 로봇 실행으로 이어지는 완결된 데이터 루프다.

이 구조가 완성되면 경쟁은 더 이상 하드웨어 사양 비교로 끝나지 않는다. 데이터 규모, 모델 성능, 반복 속도가 새로운 척도가 된다.

조선소가 증명하는 것

AgiBot이 데이터 루프를 쌓는 동안, 미국 스타트업 Persona AI는 다른 방향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 회사의 접근법은 단순하다. '지금 당장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한 일자리를 먼저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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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가 선택한 첫 번째 과제는 조선소 용접이다. 얼핏 좁아 보이지만, 선택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용접 속도는 금속이 녹는 속도에 제한되기 때문에 최고 속도가 초당 1센티미터 수준으로 관리하기 쉽다. 고품질 용접에는 밀리미터 단위의 반복 동작이 필요한데, 이는 로봇이 특히 잘하는 영역이다. 인간 용접사는 시간이 지나면 피로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지만, 로봇은 그렇지 않다.

조선소는 바퀴 달린 로봇보다 다리 달린 휴머노이드가 유리한 환경이기도 하다. 수백 미터 길이의 야외 조선소에는 넘어야 할 수평·수직 구조물이 즐비하고, 바닥·천장·현창을 오가며 작업해야 한다. Persona는 네 발 등 다른 형태도 검토했지만, 두 발 로봇이 기존 조선소 작업 흐름을 가장 덜 방해한다고 판단했다.

Persona는 현재 세계 최대 조선사 HD현대, 세계 3위 철강사 POSCO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두 곳 모두 한국 기업이다. Persona의 공동창업자 Nic Radford는 로봇 투입의 논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현재 파트너사들은 심각한 수주 적체 상태로, 인력이 부족해 성장에 제약을 받고 있다. 우리는 고객의 비용을 줄이는 게 아니라 매출을 늘려주려 한다." 로봇이 인간 용접사보다 비싸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숙련 인력을 대체한다면 추가 수익을 여는 열쇠가 된다는 논리다.

이 전략은 '마지막 이동자 우위(last-mover advantage)'라는 개념으로도 설명된다. 창고, 자동차, 가정 등 모든 기업이 노리는 범용 시장이 아니라, 경쟁자가 없는 특수 산업 현장을 먼저 선점해 경제성을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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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배울 수 있는가

두 회사의 접근법은 출발점이 다르지만 같은 곳을 향한다. Persona는 수만 시간의 전문가 시연 데이터를 수집하고, 고충실도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실세계 테스트를 반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AgiBot은 그 루프를 이미 플랫폼 수준으로 구축하고 있다. 두 경로 모두 결국 '로봇이 배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수렴한다.

이 흐름은 국내 로봇 기업에도 직접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은 HD현대로보틱스, 현대차 보스턴다이나믹스, 삼성리서치 등 하드웨어 역량을 갖춘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의 축이 데이터 축적과 AI 추론으로 이동한다면, 시뮬레이션과 실세계 간 간극을 얼마나 빠르게 좁히느냐가 다음 분기점이 된다. Persona가 HD현대·POSCO와 손잡은 것은 단순한 파트너십이 아니라, 국내 조선·철강 현장이 휴머노이드 데이터의 생산 기지가 될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과거 로봇 산업의 질문이 '움직일 수 있는가'였다면, 2026년의 질문은 '배울 수 있는가'다. AgiBot의 전략과 Persona의 현장 투입이 함께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로봇 회사들은 AI 회사가 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