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마디만 한 소프트 셀 하나가 압력을 감지하는 순간, 내부 유체 채널이 팽창하며 형태를 바꾼다. 딱딱한 금속 관절이 아니다. 변형 가능한 소재 자체가 생각하고 움직인다.

런던 기반 로보틱스 스타트업 morph가 이런 소프트 로봇 셀 플랫폼을 공개했다. 핵심은 AI를 소프트웨어 레이어가 아니라 소재 안에 직접 심는다는 발상이다. 창업자 Jean Nehme 박사는 "하드웨어와 AI를 따로 분리해 로봇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는 지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드웨어만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문어에서 배운 설계 철학

morph의 설계 철학은 문어의 적응성에서 출발한다. 셀에는 센싱과 적응 제어가 직접 내장돼 있어 실시간으로 형태와 강성을 바꾼다. Nehme는 이를 강아지나 아기가 학습하는 방식에 비유했다. "'이걸 어떻게 잡지?'라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델을 쓰는 것처럼, 우리 셀도 그 과정을 거친다."

기술적으로는 강화학습과 고충실도 물리 기반 시뮬레이션을 결합해 개념 설계에서 제품 출시까지 속도를 높인다. 과거에는 유체 역학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는 것 자체가 극도로 어려웠지만, Google·NVIDIA 등 하이퍼스케일러가 쌓아올린 컴퓨팅 인프라 덕분에 유체 구동 변형 시스템을 시뮬레이션하고 테스트하는 일이 가능해졌다고 Nehme는 설명했다.

B2B 플랫폼: 설계·제조·배포를 한 묶음으로

morph의 사업 방식은 소프트웨어·설계·제조를 통합한 B2B 파트너십이다. 변형 가능한 소프트 컴포넌트가 필요한 로보틱스 문제를 가진 기업이라면 누구든 협업 대상이다. "설계 엔진을 만들었고, 제조 스택을 구축했으며,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맞는 모델을 배포하고 테스트하는 역량도 갖췄다"고 Nehme는 밝혔다.

초기 집중 분야는 헬스케어다. 운동 능력 향상, 부상 예방, 이동 지원이 첫 타깃이다. 이후 자동차와 산업 안전 분야로 확장할 계획이다. 배포된 셀은 지속적 학습 루프를 통해 현장에서도 계속 학습한다고 Nehme는 강조했다.

국내 제조·물류 현장에서의 가능성

국내 제조업과 물류 자동화 현장은 정형화된 환경에 최적화된 기존 로봇팔의 한계를 오래 경험해왔다. 불규칙한 형상의 부품 파지,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의 협업, 다품종 소량 생산 라인 전환 등이 대표적 난제다. morph의 소프트 셀처럼 실시간으로 형태와 강성을 조절하는 컴포넌트는 이런 유연성 요구사항에 직접 대응할 수 있는 접근이다. 다만 현재 morph는 헬스케어 애플리케이션을 우선 공략 중이며, 산업 분야 적용은 플랫폼 확장 이후 단계로 설정돼 있다.

재건 외과의 출신 창업자와 이색 투자자

Nehme는 수술 AI 기업 Digital Surgery를 창업하고 엑시트한 전직 재건 외과의사다. 이번 투자 라운드에는 8VC, Copper, Qubit Health Capital, Valia Ventures, Blue Lion이 참여했다. Equinox Group 회장 Harvey Spevak과 뮤지션 Pharrell Williams도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Nehme는 로보틱스 외부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정한 혁신을 위해서는 도전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전혀 다른 렌즈로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