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룸바를 손에 넣은 사람들은 곧 이상한 경험을 했다. 기계는 방향도 없이 벽을 들이받고, 배터리가 닳거나 먼지통이 차면 멈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기계에 이름을 붙였다. '룸바'가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라 집 안의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다.
The Verge의 팟캐스트 'Version History' 시즌 4 두 번째 에피소드는 바로 이 장면에서 출발한다. 진행자 데이비드 피어스와 제니퍼 패티슨 투이가 아이로봇 공동창업자이자 전 CEO 콜린 앵글을 불러 앉힌다. 룸바가 탄생하기까지 거의 10년에 걸친 개발 과정, 수차례 무너질 뻔했던 위기, 그리고 제품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폭발적으로 팔려나간 이유를 앵글이 직접 증언한다.
아이로봇의 출발점은 청소기가 아니었다. 창업팀은 '어떤 종류든 로봇으로 사업을 만들겠다'는 절박함 속에서 군사용 로봇을 포함한 여러 프로젝트를 전전했다. 룸바는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결과물이었다. IEEE 스펙트럼의 기록에 따르면, 포커스 그룹 테스트가 제품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꾼 계기가 됐다. 소비자들이 원한 것은 완벽한 청소가 아니라 '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기계'였다.
이 단순한 통찰이 룸바를 살렸다. 2002년 출시된 룸바는 충돌 감지와 무작위 경로 알고리즘이라는 최소한의 기술로 시장에 나왔다. 성능은 기대 이하였지만, 사용자들은 그 한계를 오히려 개성으로 받아들였다. 로봇공학자 조 존스가 룸바 발명가로 '선구자의 복권'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도, 당시 업계가 이 접근법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룸바가 만든 시장은 아이로봇 혼자 독식하지 못했다. 에코백스, 로보락, 나르왈 같은 중국 브랜드들이 라이다 센서와 AI 장애물 인식, 자동 세척 기능을 탑재하며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아이로봇이 룸바로 열어젖힌 문으로 경쟁자들이 먼저 들어간 셈이다. 'Version History' 에피소드는 이 지점을 정면으로 짚는다. 아이로봇이 자신이 만든 시장에서 뒤처진 방식을 '실패'로 명시한다.
한국 시장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삼성전자 비스포크 AI 스팀, LG 코드제로 오브제컬렉션 등 국내 대기업들이 고성능 청소로봇 라인업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 브랜드들의 공세가 온라인 채널을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다. 기술 사양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룸바의 원점, 즉 '완벽하지 않아도 쓰게 만드는 설계'가 오히려 선명하게 보인다.
룸바 이후 로봇은 군사·산업 현장을 벗어나 거실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자율주행 기술, 서비스 로봇, 배달 로봇이 지금 도심을 채우는 것은 그 연장선이다.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로봇을 받아들이는 방식, 그 문화적 수용의 첫 실험실이 바로 가정집 거실이었다.








